알통가재 2012. 11. 25. 12:07

2004년 12월 19일

 

나는 바다가 좋다.
바닷물이 짜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가 이따금 싫어도 진다.
바닷물이 어느 때는 너무 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닦지 않은 바닷물이
얼굴에 하얗게 말라 붙었을 때
남모르게 긁어 맛보는 재미도
별미중 별미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남들은 환경보호다 자연보호다 하며 떠드는데
이에 반해 두들겨 맞아 죽는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그래도 두둘겨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공개를 해본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SCUBA 다이빙중 이따금 버디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눈을 돌려 기웃거린다.
적당한 크기의 다시마가 어디에 있는가
살피고 고르는 것이다.
참외밭에서 잘익은 참외 눈독들였다가
원두막의 감시의 눈이 멀어지면
잽싸게 따서 호주머니속으로 집어넣듯...
손바닥 두배정도면 적당하다.
넓적하고 두툼하면 금상첨화다.
버디가 눈치채기 전에 한잎을 덥썩 따서
슬며시 접어서 BC(부력조절기)주머니에 넣어둔다.
용도는 물론 식용이다.
그러면 그렇지 지가 먹으려고 땄지...
그러나 여기에도 사연은 있으니
인내를 갖고 귀기울려 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고해본다.

집에 도착하면 BC부터 챙겨
다시마를 꺼낸다.
검붉은 다시마 한 잎-.
그러나 끓는 남비에 살짝 데치면
검푸른 색으로 변한다.
우리 마눌이 시장에서 사온 것과는 달리
속살이 두툼한 군침도는 자연산 다시마다.
이 것을 균일하게 여섯토막을 낸다.
그리고 한 잎에는 동그라미를
또 한잎에는 세모를
다른 하나에는 네모를
네 번째 잎에는 동그라미 옆에 세모를
다섯 번째 잎에는 동그라미 옆에 네모를
여섯 번째 잎에는 세모옆에 네모를
차례로 정성스럽게 부엌칼로 구멍을 낸다.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할 때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같은
정성으로 조각을 했으리라는 짐작이다.
그리고 마눌에게 당부를 한다.
비록 부탁의 말이지만 짜여진 흥미유발을 위해
무슨 수수께끼 문제를 내듯 포장해서
침이 튀도록 속사포로 쏘아댄다.

월요일에는 동그라미
화요일 세모
수요일 네모
...
...
토요일 세모 네모

그러면 우리 마눌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대며 열심히 손가락을 꼽는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월요일 동그라미
.
.
.
토요일 세모 네모....

외우기를 끝내면 고개를 까닥인다.
물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짐작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에는 동그라미, 화요일에는 세모,
수요일에는 네모 등등 차례로 조각된 다시마로
요일에 맞춰서 된장찌개를 끓여달라는 부탁인 것이다.
무슨 퀴즈를 내듯 마눌의 흥미를 자극해서
다시마 된장국을 끓이도록 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줄잡아 한 100여가지...
그중 두가지를 간추리면
첫째 결혼한지 20년이 넘지만
절대군주 같은 카리스마가
아직도 살아있는가를 내심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알통의 음흉스런 내심도 모른채 마눌은
"오늘은 어떤 모양"하며 오히려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요일에 맞는 다시마를 골라
보글보글한 된장찌개를 매일 끓여준다.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두 번째 이유는 마눌의 고운 심성 때문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물불 가리지 않고 해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마눌도 알통에 뒤지지 않는
엉큼한 생각이 어느정도 내재돼 있다. 나는 안다.
다시마된장찌게라면 사족을 못쓰고
다른 반찬은 건드리지도 않으니
반찬투정 없어 좋고
반찬 값 안들어 가니 좋고
일거 양득인 것이다.

나와 마눌의 이같은 엉큼한 속셈끼리의 맞물림 덕분에
나는 매일 매일을 바다를 그리며 살수가 있다.
물론 세모 네모가 새겨진 다시마가
된장찌개에서 헤엄치는 날은 어김없는 토요일
일요일 꼭두새벽의 출정을 위해 장비 챙기는 날이다.
슬며시 옥탑방에 올라가 슈트며 BC며 오리발을 챙긴다.

물론 서운한 날도 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가 내려져도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밥상 옆에서 턱빠지게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리조트에서 폭풍이 걷힐 때를 기다리며
턱을 괴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풍덩을 못해도 서운할 것이 없다.
알통의 고고(?)한 삶
먹거리 또한 고고한 법
다시마가 없다고 그 삶을 포기하랴
멍개 한 마리 구해 가로로 반을 자르고
속살은 꺼내 안주로,
껍데기에는 이슬을 가득 채우니
이름하여 향과 맛이 개운한 멍개주
이 또한 별미라...

나는 그래서 비릿한 바다냄새에 휘감겨 달리는
방파제 달리기를 무진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