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impossible!/군대의 추억

미래의 대통령과의 조우

알통가재 2012. 12. 7. 15:05

 

 

나는 1974년 대학 동기들보다 1년 늦게 군대를 갔다.

튼튼한 신체 덕분에 특전사에 차출돼 공수 106기, 특수전 47차로 교육을 받았다. 12.12 사태때 사망한 고 김오랑 소령도 함께 교육을 받았다. 공수 106기에는 특별한 인연이 많았다. 미래의 대통령도 함께 있었다.

당시 공수교육대에는 일반기 106기와 또 한편에서는 "특별한 106기"가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공수교육 일대일 과외교육이라고나 할까? 장군 몇 명과 참모 몇몇이 공수교육을 "특별하게" 받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기의 특별한 교육인 만큼 귀하신 분들이 줄잡이가 되어 스스로가 궂은 일을 해결을 할 수 없지 않은가? 106기 일반 교육생중에 자세가 좋고 반복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뽑혀 줄잡이를 대신해 주었다. 지옥같은 공수교육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열외의 시간인 것이다.

당시 그 분들중에는 머지 않은 미래에 대통령이 될 분이 있을줄이야 꿈엔들 생각도 못하고 반복교육에 지친 나머지 쉬는 마음으로 기꺼이 줄잡이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캔음료가 흔한 시절이 됐지만 당시는 미군들 PX에서 흘러나오는 캔음료가 고작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확실히 특별한 분들이서인지 그 분들은 캔음료를 마시며 공수교육을 받고 있었다.
병으로서, 특전병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그 때처럼 장군이나 영관급 장교가 부러울 때도 없었다. 훗날 자대에서 장기복무를 꼬드기는 윗사람한테 "별을 달아주면 하겠다"고 꺼리낌없이 말한 것도 이 때의 부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식사시간 30초! 실시!"로 아침 밥을 때우고 매시간의 교육이 끝나자마자 물탱크츄레라 수도꼭지를 향해 선착순으로 돌진해야했던 만큼 그 부러움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40여년이 다돼가는 지금 도리켜 보면 영욕의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온 그 분들에 대해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일거수 일투족이 세인의 관심이 돼 부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 옥살이도 하고...
반면에 이 특전병은 어떤가? 비록 "모래시계"에 나오는 "태수"처럼 능력있는 검사나 출세는못됐지만 그 시절 천리행군의 기억을 더듬으며 전국의 산을 오르고 전국의 도로를 자유롭게 달린다. 
환갑을 맞은 나이에 이른 지금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건강하게 즐기고 있는 등산과 마라톤의 취미는 그 시절 특전병으로서의 경험이 밑거름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