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운동의 실천/Weight

평생 공부 평생운동

알통가재 2013. 1. 3. 03:14

평생공부 평생운동의 신념으로 살아왔다. 운동은 이것 저것 굳이 가리지 않는다. 유도, 태권도, 복싱, 보디빌딩, 골프, 수영,마라톤, 싸이클, SCUBA, 역도, 테니스 등 내 스스로 생각해도 다양하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운동특기생으로 오해를 많아 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전공이 있고 운동은 취미에 불과 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럭비다. 스타플레이어가 없고 팀웍을 중요시 하는 남자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자격면허도 여럿 된다. 운전면허야 요즘 기본이고 소형선박조종면허, 산림기능사(엔진톱),산림경영기사1급, 산토목공학기사1급,국민생활체육지도자(보디빌딩),스킨스쿠버다이브마스터,인명구조원 등이 있다.

나에는 밤새우며 수다스럽게 떠들만한 이야기꺼리가 제법 많다. 취미도 다양하다. 몇있지만 그중 잘은 못해도 서예를 줄곧 해왔다. 앞으로 70까지 일하고 그 이후는 훈장자격을 따서 코흘리개들과 함께할 생각이다.

학창시절 공부는 대학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으니 제법 한 편이다. 60나이에 이르러 산림기사 공부를 하고 기사자격을 따서 직장생활을 하며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새해를 맞아 앨범을 들여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난해 회갑이었는데 금방 1년이 지났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세월 따라몸의 변화도 살펴볼겸 블로그에 사진을 연도별로 올려본다.

 

 

 

 

 

 

 

1967년 중학교 2년 시절 운동좋아하는 형님들의 눈을 피해 몰래 아령을 들던 시절이다.

그러나 형님들은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운동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리셨다.

그래도 어린나이에 친구들 앞에 우쭐대고 싶어 몰래 했다.

서울 아차산에 친구들과 놀러가서 외국잡지에 나온 선수 흉내내며 사진을 찍었다. 

 

 

 

휘문고등학교 시절 역도 지도를 해주셨던 은사님 유인전 선생님이

미스터코리아 학생부 출전을 권유하셔서 그 참가신청을 위해 촬영을 해주셨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소중한 사진 한장이다.

 

 

 

고려대학교 농대에 입학했던 1971년 대천합숙훈련장에서의 사진이다.

그해 힘의 미전, 미스터 고대 선발전에 출전해 2위 입상했다.

그리고 1972년은 소위이야기 하는 위술령으로 집회가 허락되지 않아

힘의미전도 무산됐다.

 

 

 

 

1973년은 정말 고민스런해였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다그러하듯

군입대를 앞두고 갈등을 가졌던 것은 누구에게나 똑 같을 것이다.

72년이 헛되이 지나가고 군입대를 앞두고 운동이 게을러져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이 해에 힘의미전에서 역시 미스터고대 2위로 입상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다. 39살이던 때다. 참 이 때도 갈등이 많았다.

직장다닐 때인데 한참 일할 "과장"이었던 때다. 아이는 아들과 딸이 년년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다.

정체기였다고나 할까 이를 금연과 운동으로 돌파하기로 작정하고 미스터코리아 출전을 결심한다.

대학 다닐 때 당시에는 끼리끼리 나눠먹기와 부정 비리가 많아 미스터코리아와 같은 대회는

참석을 안했는데 입선이 목표가 아니라 슬럼프 탈출이 목표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출전을 했다.

연맹에 전화를 했다. 현역선수는 몇살까지인가를 물었다.

39살까지가 현역이고 그 담은 장년부에 속한다는 것-.

헤비급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그나마 39살의 나이에 예선을 통과한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2000년의 모습이다. 다니던 직장을 접고 개인 사업을 할 때다.

이 시절 참으로 건방스러웠다는 생각이다.

술접대 없고 실력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업체하고만 거래를 했다.

운동을 해야 하니까-. 열과 성으로 업무를 꾸려나가니까 안될 일도 없었다.

대한민국 실정에 비추어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흔히 남들이 이야기 하는 "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었고 아이들도 잘 커주었다.

아들 녀석은 지 애비가 다녔던 고대에 입학했고 써클도 역도부로 쫓아왔다.

차이는 나는 주장을 못해봤는데 그녀석은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이 때는 이미 귀농을 결심해 경북 봉화와 서울을 오가며 살때다.

 

 

 

 

2007년의 모습이다.

1998년 이후 마라톤과 웨이트를 병행하던 시절이라 하체 근육의 변화가 눈에 띈다.

무릅 위의 근육을 어릴 때 사진과 비교해 보면 알수가 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매년 4월 18일이면 4.19 학생의거를 촉발시켰던 4.18을 기념하기 위해

본교와 수유리 4.19학생묘역간 왕복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2004년 이후 4.19정신도 계승발전 시킨다는 의미에서 매년 상경해서 역도부 재학생들과 함께 뛰었다.

 

 

 

2008년 재학생들이 미스터 고대를 선발하는  힘의 미전에 찬조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작년 2012년은 제49회 힘의 미전 때 모습이다.

작년에 회갑을 맞았다. 딱히 옛날 처럼 환갑 잔치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재학생들에게 이번에는 내가 요청을 했다.

회갑기면 찬조 출연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성사가 됐다.

 

어느 하나만 이루려 했으면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내 취향이 아니다. 후회는 없다. 지금이 좋다.

어느 사람을 만나도 즐겁고 무엇을 해도 즐겁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날 까지

평생공부, 평생운동의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나의 흔적 나의 졸저 "도랑치고 가재잡고" 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라톤 산문집이란다.

후배들이 처음엔 알통이라 불렀다.

이 책을 펴낸후에는 별명이 알통가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