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요즘 사치스러워진 것만 같다. 비록 달리기에 입문한지는 10년이 넘었지만 달릴만한 곳, 달림이들이 어울리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 달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또 하루종일 달리고 싶어 생업에 매어있는 자신을 한탄한 적도 여러 번이었으며 급기야는 땅끝으로 내려가 임진각을 바라보며 연 3일을 달리기도 했다. 불과 몇년전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엄청 딴청에 딴짓이다. 겉으로 내놓고 수다는 떨지 않지만 내심 코스와 마라톤대회를 선택하는 체크리스트가 제법 복잡해진 것이다.
저기 저 코스는 너무 먼지가 많이 나서 싫어. 저쪽은 가끔 오수 냄새가 역겨워. 저 대회는 너무 장사속이라 싫어. 저 대회는 언덕이 너무 많고 높아. 이 더위에 그늘도 없고 머리 까질 일 있나? 저 코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해 등등...
세상살이 자기 마음에 차는 떡 없다고 떠들며 언성을 높일 때도 있었는데 올챙이 시절을 잊은 듯 이제는 제법 낯을 가린다. 이는 분명 사치스러워진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운동화를 던져놓지 않고 기꺼이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린다는 것이다. 아니 사치에 빠진 지금이 마라톤을 "진쪽"으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고도 편한대로 진화하는 법, 결국 “그러면 됐지”로 안도의 한숨도 내쉰다. 마라톤 대회라면 빠뜨리지 않고 참가하는 것도 한 재미다. 하지만 이따금 사치에 젖어서 달리고 싶은 대회, 달리고 싶은 코스를 비싼 옷감이나 귀금속 고르듯 골라서 달리는 것도 마라톤의 한 재미라는 생각이다. 평생을 달릴만한 코스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억만금 나가는 명품에 집착하는 세속의 사치를 잊게 해주는, 큰 행운이 늘 함께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