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운동의 실천/마라톤

마라톤의 빛깔

알통가재 2013. 1. 10. 06:35

 

 

 

 

 

마라톤을 색으로 표현하면 무슨 색일까? 마라톤이 그림이라면 동양화? 서양화? 어떤 화풍의 그림일까?
이따금 마라톤이 고달픈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 때 떠올려 보았던 의문이다. 아마도 마음 한구석 그 답을 이미 만들어 놓고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해 마라톤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이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답을 미리부터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해도 색과 그림에 문외한이니 만큼 순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마라톤을 대표할 수 있는 색이라면 42.195뿐만이 아니라 그 전과 후 모두가 담겨져야 한다. 그리고 그림은 당연히 그 색이 종의 요소가 아닌 주의 요소로 그려진 그림이어야 한다. 때문에 그 색에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져야 하고 희로애락이 스며 있어야 한다.
완주후의 환희만을 생각한다면야 화려한 혼합색, 무지개 빛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짧은 순간이 화려하게 표현되면 쉽사리 싫증을 부를 수도 있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열대의 바다 속을 여행한 적이 있다. 형형색색의 산호와 열대어들로 처음에는 환상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러나 서너번 이어지면서 어깨에 짊어진 공기통이 쉽사리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푸른 우리의 바다는 느리게 넘어가는 우리네 춤사위처럼, 손을 약간 비트는 정도의, 철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만으로도 절대적인 흡입력을 갖고 있다. 조류가 빠르고 뻘로 가득한 서해바다일지라도...
역시 색의 문제인 것이다. 싫증이 나지 않는 색, 즐거울 때는 하늘로 치솟고, 처절한 고통이 찾아들 때는 땅바닥에 나뒹굴 것만 같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색, 바로 그런 색이 마라톤빛깔이라는 생각이다.
당연히 먹이다. 검정색인 것이다. 혹자는 "저런 먹통"하며 놀릴지도 모르지만 도리 없다.
먹색의 본질은 모든 색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빨 노 파 삼원색이 합쳐지면 검정 색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모든 색이 녹아 있다는 상징성, 마라톤에 버금가는 매력이다. 또 신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이 색의 옷을 주로 입는다는 사실도 주목하고 싶다. 신부님, 스님, 수녀님들은 이색의 옷을 입는다. 검정이 엷으면 당연히 회색이다. 마음이 편한 색이다. 그러면 이 색으로 그린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이 또한 당연한 답이지만 우리의 수묵화다.
검정 색에 물만을 타서 진하게 아니면 엷게, 춤사위 손목 슬쩍 내젓는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피터팬 수 백명과 백설공주 수 만 명이 모여 사는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마라톤과 꼭 맞아떨어지는 어울리는 그림인 것이다. 여기에서 혹 부정적 의심이 생겨날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염료가 다양치 못했고 색의 변화를 몰랐다고 비하할 수도 있다. 택도 없는 소리, 천만의 말씀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금강산만 하더라도 철따라 아름다움이 각각 다르다해서,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에는 풍악, 겨울에는 개골이라고 불렀으며 그 화려한 변화와 기상을 모든 색이 녹아있는 수묵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수묵화의 선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을 떠올려 보아도 마라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말인가를 알 수가 있다.
필단의연(筆斷意連)-.
필획은 끊어져도 그 뜻, 그 의지는 이어진다. 허구헌 날 마라톤만 하면서 살수는 없는 일, 생업에 열중하면서 마라톤을 하지만 그 의지는 줄기차다. 마라톤은 먹이요 한 폭의 수묵화인 것이다. 그렇다고 마라톤 유니폼을 모두 검정 색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마라톤은 신께로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고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즐기며 나름의 목표를 향해 의지를 불태울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