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칭찬 인색한 스크루지는 그 버릇 무덤까지 갖고 간다.
알통가재
2013. 1. 13. 10:01
제일 듣기 좋은 칭찬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또 해주고 싶은 칭찬은?
살아가면서 나이에 따라,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여러 내용의 칭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나치지 않는다면 듣는 이에게는 큰 힘을 실어준다. 또 걸맞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는 사람은 넉넉함이 느껴져 늘 가까이 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몰라도 한때는 대통령이 방귀를 소리내서 뀌자 옆에서 지켜보던 측근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회자된 일이 있다. 아부의 백미로 꼽아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그 소리를 들은 늙으신 대통령께서는 과연 힘을 얻고 좋아했을까를 늘 생각해 본다. 칭찬과 아부는 쉽사리 구분할 수가 있어 다행이지만 결코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솔직히 지난 날을 도리켜보면 부모님이나 친지,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듣고 싶었던 칭찬도 많았고 그 칭찬을 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칭찬은 몸과 마음과 행동의 일치된 절제와 분발 없이는 결코 아무나 쉽사리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인지 칭찬보다는 꾸지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돼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제껏 살아 오면서 듣고 싶었던 칭찬, 하고 싶은 칭찬을 몇가지 열거해보자니 한과 기쁨이 함께 서려있다. 아울러 그 의미 또한 새삼스럽게 새겨진다.
"실하고 튼튼하다"
전쟁중 아니면 종전과 더불어 태어나 부스럼과 마른버짐을 친구삼아 자란 DDT세대들 모두가 듣고 싶었던, 해주고 싶은 칭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풍요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요즘도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슬며시 자리를 뜬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유가루, 옥수수죽, 옥수수빵 등 미국의 잉여물자 원조법이라고 하든가 PL480도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정말 듣고 싶었던 칭찬이다. 그리고 지금도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들만 보면 부모 앞에서 거침없이 해주는 칭찬이다.
"공부도 잘하지만 운동도 잘해"
몸도 커지고 머리도 커가면서 입시시험과 체능검사를 함께 치러야 했던 세대로서 무엇보다도 듣고 싶었던 칭찬이다. 입시시험에서 적당한 곳만 찾아 다니다 보니 낙방은 모르고 자랐고 공던지기는 담장을 넘겼으니 어느정도 근접은 했다. 그러나 오히려 꾸지람만 기억난다.
"인석아 어여 공부나해 운동은..."
언젠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겠다고 당차게 외치고 선수촌을 박차고 나왔던 어린 여학생 수영선수(우리나라 자유영의 1인자)를 만나면(찾아가서라도) 반드시 해주고 싶은 칭찬이다. 그러나 그 여린 여학생에게 선수자격 박탈의 징계를 내려야 했던 닫혀진 이 사회가 열리기 전에는 전업선수의 성업시대가 이어져 누구도 더 이상 그 칭찬을 들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효자야!"
아마 나이들어 가며 누구나 듣고 싶은 칭찬인지도 모른다. 핵가족 시대 자식을 키우면서 더욱 그 의미가 새겨진다. 효라는 것을 어렴풋 알았을 때는 부모님 모두 이 세상에 안계시니 어리석음에 울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거침 없이 해주고 싶은 칭찬이기도 하다.
"자식농사 잘 지었군"
공부보다는 염치를 가리키려 했는데 아직도 진행중이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남의 자식 흉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신 어르신들의 말씀이 늘 생각난다. 자식이 염치있고 예의바르게 잘 키운 사람에게 해주소 싶은 칭찬이다. 자식들이 잘된 집안을 보면 늘 부럽다.
"잘 달린다", "역시 명문대회 다르다"
마라톤을 좋아하다보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이 또한 듣고 싶은 칭찬이다. 이 말 앞에 "부상없이"라는 말이 한마디 덧붙여졌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록도 좋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늘 재미나게, 즐겁게 달리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또한 달림이들이 마라톤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그 장을 마련해주고 매끄럽게 이끌어 주는 마란톤 대회 주최측에도 한껏 칭찬해주고 싶은 말이다.
"섹시하다"
클럽 여성후배로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들은 칭찬이다. 혹자는 나이 오십이 넘어 그 것이 욕이지 칭찬이냐며 핀잔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모르는 말씀이다. 한번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황홀경에 몸둘 바를 모른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을까?
삶의 참 맛을 갈구하는 마라토너로서 숨겨진 뜻이 없다는 것은 공개적인 칭찬에서도 찾을 수가 있지만 "건강미가 넘친다"는 의미에 무게가 더 실렸으리라는 짐작이다. 적잖은 나이의 남녀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장년기에 듣는 이 한마디는 이 세상에서 무력감을 주는 모든 것은 "비키그라"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지 않을까.
"후회없이 사셨습니다."
몇해전, 큰 형님이 돌아 가시기전 병상에 계실 때 지켜보면서 말을 한참이나 아끼다 "형님은 후회없이 사셨습니다. 저 어렸을 때 형님은 제 마음속의 영웅이셨고 우상이셨습니다"고 숨김없이 말씀을 드렸다. 터울이 길어 다른 친구들의 아버님 같은 형님은 "그래?" 하시며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며칠후 형님은 돌아 가셨다. 막내 동생이 큰 형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린 칭찬이며 격려였다. 아마 그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면 평생의 후회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없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매일 매일이 후회의 연속이다.
"재미나는 아부지, 바라보시기만 해도 힘이 되는 또 다른 칭찬의 엄니"
아버님은 고사리 같은 어린 손에 바둑알과 장기쪽, 어떤 때는 화투짝까지 쥐어 주시며 놀이를 먼저 청하셨다. 재미에 이끌린 어린 아들과의 놀이 중간 중간에는 세상의 좋은 일과 나쁜 것을 구분해서 놀이재미에 담아 말씀해 주셨으며 짐짓 져주시면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다. 때로는 혀를 내밀어 연필에 침을 바르시고 굵고 진하게 글을 써 주시면서 "하늘 천 따지"를 중얼거리시고 아들이 저절로 따라하기를 기다리셨다. 어머님은 그 때 빙긋 빙긋 웃으시며 바라만 보고 계셨다.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칭찬과 격려였다.
사람의 모습과 개성이 제각각이듯 듣고 싶은 칭찬과 해주고 싶은 칭찬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로 똑 같은 것은 칭찬과 격려는 아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어느 방송사에서는 "칭찬합시다"란 프로그램도 있었다. 칭찬이 박한 세상이기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재물에 인색한 스쿠루지는 개과천선이 가능하지만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스쿠루지는 그 버릇을 무덤까지 갖고 가기 때문에 죽어서도 후회를 한다. 아낄 것을 아껴야지 칭찬과 격려를 아낀다면 살아서도 삭막한 세상을 살 것만 같다.
또 해주고 싶은 칭찬은?
살아가면서 나이에 따라,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여러 내용의 칭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나치지 않는다면 듣는 이에게는 큰 힘을 실어준다. 또 걸맞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는 사람은 넉넉함이 느껴져 늘 가까이 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몰라도 한때는 대통령이 방귀를 소리내서 뀌자 옆에서 지켜보던 측근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회자된 일이 있다. 아부의 백미로 꼽아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그 소리를 들은 늙으신 대통령께서는 과연 힘을 얻고 좋아했을까를 늘 생각해 본다. 칭찬과 아부는 쉽사리 구분할 수가 있어 다행이지만 결코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솔직히 지난 날을 도리켜보면 부모님이나 친지,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듣고 싶었던 칭찬도 많았고 그 칭찬을 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칭찬은 몸과 마음과 행동의 일치된 절제와 분발 없이는 결코 아무나 쉽사리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인지 칭찬보다는 꾸지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돼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제껏 살아 오면서 듣고 싶었던 칭찬, 하고 싶은 칭찬을 몇가지 열거해보자니 한과 기쁨이 함께 서려있다. 아울러 그 의미 또한 새삼스럽게 새겨진다.
"실하고 튼튼하다"
전쟁중 아니면 종전과 더불어 태어나 부스럼과 마른버짐을 친구삼아 자란 DDT세대들 모두가 듣고 싶었던, 해주고 싶은 칭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풍요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요즘도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슬며시 자리를 뜬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유가루, 옥수수죽, 옥수수빵 등 미국의 잉여물자 원조법이라고 하든가 PL480도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정말 듣고 싶었던 칭찬이다. 그리고 지금도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들만 보면 부모 앞에서 거침없이 해주는 칭찬이다.
"공부도 잘하지만 운동도 잘해"
몸도 커지고 머리도 커가면서 입시시험과 체능검사를 함께 치러야 했던 세대로서 무엇보다도 듣고 싶었던 칭찬이다. 입시시험에서 적당한 곳만 찾아 다니다 보니 낙방은 모르고 자랐고 공던지기는 담장을 넘겼으니 어느정도 근접은 했다. 그러나 오히려 꾸지람만 기억난다.
"인석아 어여 공부나해 운동은..."
언젠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겠다고 당차게 외치고 선수촌을 박차고 나왔던 어린 여학생 수영선수(우리나라 자유영의 1인자)를 만나면(찾아가서라도) 반드시 해주고 싶은 칭찬이다. 그러나 그 여린 여학생에게 선수자격 박탈의 징계를 내려야 했던 닫혀진 이 사회가 열리기 전에는 전업선수의 성업시대가 이어져 누구도 더 이상 그 칭찬을 들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효자야!"
아마 나이들어 가며 누구나 듣고 싶은 칭찬인지도 모른다. 핵가족 시대 자식을 키우면서 더욱 그 의미가 새겨진다. 효라는 것을 어렴풋 알았을 때는 부모님 모두 이 세상에 안계시니 어리석음에 울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거침 없이 해주고 싶은 칭찬이기도 하다.
"자식농사 잘 지었군"
공부보다는 염치를 가리키려 했는데 아직도 진행중이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남의 자식 흉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신 어르신들의 말씀이 늘 생각난다. 자식이 염치있고 예의바르게 잘 키운 사람에게 해주소 싶은 칭찬이다. 자식들이 잘된 집안을 보면 늘 부럽다.
"잘 달린다", "역시 명문대회 다르다"
마라톤을 좋아하다보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이 또한 듣고 싶은 칭찬이다. 이 말 앞에 "부상없이"라는 말이 한마디 덧붙여졌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록도 좋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늘 재미나게, 즐겁게 달리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또한 달림이들이 마라톤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그 장을 마련해주고 매끄럽게 이끌어 주는 마란톤 대회 주최측에도 한껏 칭찬해주고 싶은 말이다.
"섹시하다"
클럽 여성후배로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들은 칭찬이다. 혹자는 나이 오십이 넘어 그 것이 욕이지 칭찬이냐며 핀잔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모르는 말씀이다. 한번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황홀경에 몸둘 바를 모른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을까?
삶의 참 맛을 갈구하는 마라토너로서 숨겨진 뜻이 없다는 것은 공개적인 칭찬에서도 찾을 수가 있지만 "건강미가 넘친다"는 의미에 무게가 더 실렸으리라는 짐작이다. 적잖은 나이의 남녀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장년기에 듣는 이 한마디는 이 세상에서 무력감을 주는 모든 것은 "비키그라"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지 않을까.
"후회없이 사셨습니다."
몇해전, 큰 형님이 돌아 가시기전 병상에 계실 때 지켜보면서 말을 한참이나 아끼다 "형님은 후회없이 사셨습니다. 저 어렸을 때 형님은 제 마음속의 영웅이셨고 우상이셨습니다"고 숨김없이 말씀을 드렸다. 터울이 길어 다른 친구들의 아버님 같은 형님은 "그래?" 하시며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며칠후 형님은 돌아 가셨다. 막내 동생이 큰 형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린 칭찬이며 격려였다. 아마 그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면 평생의 후회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없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매일 매일이 후회의 연속이다.
"재미나는 아부지, 바라보시기만 해도 힘이 되는 또 다른 칭찬의 엄니"
아버님은 고사리 같은 어린 손에 바둑알과 장기쪽, 어떤 때는 화투짝까지 쥐어 주시며 놀이를 먼저 청하셨다. 재미에 이끌린 어린 아들과의 놀이 중간 중간에는 세상의 좋은 일과 나쁜 것을 구분해서 놀이재미에 담아 말씀해 주셨으며 짐짓 져주시면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다. 때로는 혀를 내밀어 연필에 침을 바르시고 굵고 진하게 글을 써 주시면서 "하늘 천 따지"를 중얼거리시고 아들이 저절로 따라하기를 기다리셨다. 어머님은 그 때 빙긋 빙긋 웃으시며 바라만 보고 계셨다.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칭찬과 격려였다.
사람의 모습과 개성이 제각각이듯 듣고 싶은 칭찬과 해주고 싶은 칭찬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로 똑 같은 것은 칭찬과 격려는 아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어느 방송사에서는 "칭찬합시다"란 프로그램도 있었다. 칭찬이 박한 세상이기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재물에 인색한 스쿠루지는 개과천선이 가능하지만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스쿠루지는 그 버릇을 무덤까지 갖고 가기 때문에 죽어서도 후회를 한다. 아낄 것을 아껴야지 칭찬과 격려를 아낀다면 살아서도 삭막한 세상을 살 것만 같다.
글그림 : 알통 http://blog.daum.net/dumj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