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운동의 실천/마라톤

운동은 살아있다는 본능적 확인의식

알통가재 2013. 1. 18. 15:08

 

 

 

운동을 몹씨 좋아한다.
마라톤과 웨이트를 병행하고 있고 구경보다는 실전, 실행을 더 좋아한다.
지나온 60년의 세월을 도리켜 보면 실로 많은 운동을 해왔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기종목은 물론 권투, 태권도, 유도, 골프, 스쿠바, 마라톤, 역도 등 운동욕심은 대단한 편이다.
그 많은 종목을 어떻게 하며 "혹시 맛배기로만 즐겼겠지?"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격투기를 즐겼을 때는 몇 번의 KO승과, 몇 번의 KO패의 기록을 갖고 있으니 결코 맛배기로만 즐기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마라톤과 웨이트트레이닝은 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기본 종목이다. 50 대 50의 비중이다.
그러나 이따금 권태롭다 싶으면 도복 둘러메고 도장을 찾아 어린 친구들과 한판승부도 꺼리지 않는다. 얼굴이든 몸통이든 가끔 피멍이 들어 돌아와서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탈이지만-.  요즘은 뼈가 상할까 내 자신이 스스로 "부딪히는" 운동은 피하고 있기는 하다. 

 

생활이 방만해졌다, 느슨해졌다 싶으면 주말에 거침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동해든 서해든 바다를 향해 나선다. 방파제 달리기도 일품이지만 이따금 바닷속에서의 무중력과 고요의 경험은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도록 해준다.
특히 공기통 둘러메고 먼바다를 향해 질주할 때 배에서 느껴지는 어느정도의 두려움, 미지의 장소에 대한 호기심은 긴장이라는 실체에 휩싸여 몸과 마음의 추슬림을 강요당한다. 어린 시절 천둥번개가 치면 이불 뒤집어 쓰고 나의 죄가 무엇이었던가를 새겨보고 바르게 살겠다고 두려운 누군가를 향해 되뇌였던 것과 똑 같은 경우가 반복되는 것이다.
 때문에 낙하산 짊어지고 창공으로 몸을 날리기 직전 비행기에서의 느낌이나, 바닷속으로 뛰어들기 전 배에서의 느낌, 또 마라톤에 앞서 운동화 끈을 졸라맬 때 완주에 대한 두려움, 대중 앞에 서기전의 보디빌더의 마음, 이 모두는 어쩌면 한가지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전문가들이 볼 때는 맛배기인지 모르나 어느 종목이든 남달리 쏟고 있는 애정을 "진짜배기"의 증표로 삼고 싶다. 그렇다고 매일 운동에만 매달리는가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생업에도 남다른 열정으로 매달린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가치관, 자신만이 지키고자 하는 좌우명을 한 가지는 간직하고 살아 갈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 손쉬운 말 한가지로 압축을 해본 일이 있다. 비록 고상하게는 안 들릴지 모르지만 "쌔빠지게 일하고 쌔빠지게 놀자"가 그 말이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서 살아간다.

다만 "디자인"이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퇴전까지는 평생 책의 편집, 시각디자인으로 생업을 유지했고 운동을 통해 내몸을 디자인 했다.  흔히 말하는 은퇴후 인생2막도 역시 디자인이다. 이제는 제법 스케일이 크다. 농사 일이 그랬고 산림기사가 돼서 숲을 가꾸고 산을 디자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활자와 여백, 그리고 그림, 그리고 약간의 데코레이션으로 조화를 일궈내 한쪽 한쪽이 마무리되면 수백쪽의 책이 완성된다. 한 발짝 한 발짝 달리다 보면 42.195km를 완주하게 된다. 팔이 약하다 싶으면 아령운동으로 알통을 솟게하여 균형있는 몸만들기를 해나간다. 나무들의 경합이 치열한 숲에서 솎아주기와 가지치기로 숲을 디자인을 한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됐을 때, 42.195km를 완주했을 때, 몸가꾸기 시연으로 육체미를 뽑낼 때, 숲가꾸기가 완성되고 몇년후 건강하고 울창한 숲을 만났을 때(이 것은 늦게 시작해 조금 더 있어야 하겠지만) 그 기쁨은 누구도 짐작 못할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내 몸은 언제쯤 완성이 될까 쓸데없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인생이 다  그런 것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지속됐으면 하는 욕심이다. 운동은 살아가기 위한 생업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패기있게 발랄하게 살고 있다는 본능적 확인의식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과 똑 같은 본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