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을 터트리고 박살내며 삽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재미 삼아 인생 후반부를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그 동안 나의 삶을 보기 좋게 포장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양성, 유연성, 역지사지, 그리고 뒤늦게 갖게 됐지만
곧 맨 앞자리에 자리매김할,
소망과 사랑이 포함된 믿음이라는 단어들이 떠올려져 따로 적어보았습니다.
믿음 한마디에는 앞서의 유연성과 다양성, 역지사지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또 다른 날 다시 적어보면 다른 말들이 적혀질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잠시 다시금 들여다 보는 순간 분통이 터집니다.
믿음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릅니다.
60년을 살아오면서 겪은 희로애락, 여기에서 파생돼 스쳐 지나 간,
기억될 수 있는 수 많은 단어는 온데 간데 없고
단 몇 마디뿐 인가란 생각이 떠올려지는 순간
분통이 터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 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를 힘썼고
언젠가 인생을 마감한 후
누군가가 “알통은 참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유영성 있게 살았어 믿음도 깊었지” 하는
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져 있는 것입니다.
나의 묘지명이 공허하게 빈다는 것은 서글픔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비워달라고도 했다는데...
그러나 이상한 것은 억울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분통은 터지는데 억울할 것이 없다 참으로 이상하죠.
그러나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짐작했을 것입니다.
분통이란 어차피 관념적인 표현인데
이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마음 속에 생겨났을 때 터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박살내는 것입니다.
분통이 박살 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억울함이 담길 그릇이 어디 있겠으며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분통을 터트려 박살내면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