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어느 때는 달리기가 신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러사람이 마라톤을 하고 그 경험을 글로 남겼다.
그 글을 모아 책으로 남겼다.
출판되기 전 그 글들을 모아 읽어 보라고 보내 주었다.
제목이 "당신이 마라톤을 알아?"이다.
이윤정씨 외 서른명이 마라톤을 통한 자아발견기를 한데 모은 책이다.
책 제목부터 느껴지는 당돌함과 비 예의가 눈길을 모은다.
책나오기전 출판사에서는 수록할 원고내용을 보여주면서 추천사를 부탁해 왔다.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제목을 "42.195"로 잡고 추천의 글을 선뜻 대신했다.
그 추천의 글이다.
42.195-.
말만 들어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42.195, 그 것은 미리부터 느껴지는 어느정도의 두려움과 어느 정도의 희열,
어느 정도의 도전과 모험이다.
때문에 42.195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자체가 고통과 인내 그리고 환희,
감동이 한데 어우러진 한 권의 책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쉽사리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에 앞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마라토너들은
흡사 신간서적 속의 활자와도 같으며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뛰어 나가
읽는 이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영원히 간직되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잉크 냄새 물씬한 신간서적은 42.195라는 멀고 긴, 험난한 항해를 통해
한 권의 빛나는 장서로 거듭 나게 된다.
다시말해 42.195를 완주한 이들은 고통과 인내의 짜릿한 검증을 통해
고색창연한 도서관의 책꽂이를 장식할 한 권의 장서로서의 영광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 장서 속에는 풍파를 헤치고 긴 항해를 외롭게 끝마친 이들의 진한 땀이 스며 있으며
그들의 폐포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온 힘찬 언어는 두고 두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게 된다.
마라톤은 그 여정이 긴 만큼 여운 또한 길게 이어진다.
많은 이들이 마라톤을 삶에 비유하면서 예찬을 서슴치 않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라든가 또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길을
스스로 가야만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고 곁들여지는 성찬이기도 하다.
장엄한 삶의 바다에서의 이야기라 주제가 무겁고 광대해 부담이 안겨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손쉽게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옷깃을 다시금 여밀 정도로 숙연토록 만들기도 한다.
42.195를 달리면서 롱펠로우 시인의 "인생찬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언덕을 만나 힘겨울 때면 예외 없이 그 시인의 노래 몇 구절이 절로 읊조려진다.
그 시인은 노래 서두에서
"인생은 한낱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주문하면서
"이 세상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터에 나선 영웅이 되거라!"고 외친다.
그는 또 위인이 아닌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이 세상 떠날 때는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강변하면서
그 발자국은 아마도 후일에 장엄한 삶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외롭게 난파한 그 어떤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그런 발자국일 것이라고 했다.
이따금 달리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언감생심 (焉敢生心) 롱펠로우 시인이 노래한 그런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라토너들이 뚜렷하게 남겨놓는 시간의 모래 위의 발자국-.
장엄한 삶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남겨지는 감동의 흔적인 것이다.
여기 이 책 속에는 42.195의 긴 여정을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의 두려움과 희열,
땀내 흥건한 감동으로 얼룩진 발자국이 담겨져 있다.
책명은 "당신이 마라톤을 일아?"였고
펴낸곳은 출판사 "지식공작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