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구경/세상만사
빛바랜 영농일지를 읽으며
알통가재
2013. 1. 28. 06:53
2003년 생애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걷어 올린
첫번째 수확은 쥬키니 호박 7박스(70kg)였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포장을 해서 첫 출하를 하고
흥분과 긴장속에 결과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나에게 돌아온 것은 거금 4300원-.
0과 원 사이에 만자 하나가 들어가 있었으면...
출하비, 상하차비, 박스비 등등 을 제외하고
손에 닿은 금액이다.
그래도 그렇지 장국 한그릇 값도 안나와 젠장!
마라톤을 하다 경사심한 언덕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
실망스럽지만 돈만 생각하는 속물근성이라고 애써 치부하고
부지런히 다음 출하를 준비했다.
밑지지 않고 거금 4300원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라는 생각에 입금통장을 보고 또 보고
0이 하나만 더 붙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쯤
통장을 다시 깊숙한 곳으로 드리밀었다.
호박은 뒤돌아 보면 금방 몰라보게 틀려진다.
쑥쑥 큰다.
이틀 뒤 40박스,400kg을 출하했다.
이틀전 시세라면 2만원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이 오면 막걸리 한잔 따라줄 값만 나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갖고 출하했다.
돌아 온 것은 참담함 뿐이었다.
장세폭락으로 농협에서 포장비 몇백원 보조해준 것이 고작이다.
누군가 막걸리 한잔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궁상맞은 생각도 들었다.
벌써 10년전이다. 요즘도 별반 달라진점이 없어
농민들이 측은해 보인다.
(주일 오전 10년전 영농일지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