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포 큰 도둑
오만원권이 나오기 훨씬 전의 이야기다.
청와대에서 긴급 호출이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다.
나는 하던 일 멈추고 마하의 속도로 달려갔다.
대통령이 직접 마지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밀스럽게 일을 지시했다.
"세상에 김승기 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
물건 배달이다. 하늘색 택배 상자가 여럿이다.
상자들을 차 트렁크에 싣고 청와대를 나오면서 무척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아무나 안시키고 하필 나를...
호기심 많은 나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그러면 그렇지 예상한 대로 돈더미였다.
갈등이 생겼다.
내가 모두 가져도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집으로 갖고 가자.
아니다 그래도 대통령 심부름인데 반만 갖자.
아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돈 일원도 훔쳐보질 않았는데
깨끗하게 미련을 버리자.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결국 물건 배달을 무사히 끝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웃저고리 호주머니에서 종이 구겨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꺼내보니 만원짜리 한장이 나온다.
돈상자를 닫을 때 누군가 볼까봐 몰래 한장 뽑아 넣어둔 것.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주먹으로 이마를 쳤다.
수많은 돈 놔두고 겨우 만원에 양심을 판 것 같은 허전함, 억울함,
서글품, 소심함이 뒤엉켜 쓰나미되어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뺨을 세차게 철썩 후려치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
"어마 나 등부러져 죽네.한밤중에 울면서 남 등을 왜 두드려 패! 아구구..."
마누라의 까무라치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깼다.
한 숨이 절로 나왔다. 꿈이길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남에게 속보인 것만 같았다.
새가슴 겨우 만원에 양심을 팔다니
지금 생각해 봐도 뒷맛이 영 개운치가 못하다.
물론 개꿈이니까 내가 꿨겠지만 생시에도 내 가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꿈이었다는 생각이다.
겨우 일만원에 새가슴...하지만 위안은 있다.
수십억에서 만원은 작지만 일원짜리로 보면 1만개나 된다.
나는 뱃포 큰 도둑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