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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견적이 안나와요!글과 함께 춤을/소설놀이 2013. 1. 12. 12:57
어느날 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저 직장을 옮겼는데 한번 들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왜 하필 이 어려울 때 직장을 옮겨? 외국계회사로 대우도 괜찮았잖아?
그런데 대체 어느회사로 옮겼어?"
"저 그것이.... 역시 외국계지만 보험회사... 아무튼 형님 찾아 뵙고 자세히 말씀드릴께요."
대강 짐작이 갔다. 이 같은 전화를 하고 찾아 온 선배와 후배가 몇번째인지는 모르지만
보험회사를 다니게 됐다니 또 한번 가입해 주고 해약하면 된다.
물론 손해지만 선배입장에서 후배 체면이라도 세워주어야 하지 않는가 해서 그렇게 해준 것이 여러번이다.
후배는 사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여기 저기를 휘둘러 보았다. 그런데 한군데 시선을 모으더니 대뜸 물었다.
"형님 SCUBA 하세요? 그리고 저 낙하산 사진은... 그리고 마라톤까지..."
후배는 사무실에 걸려있는 사진과 기록증 등을 살피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문을 채 잇지를 못했다.
수쿠버사진은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이다. 강원도 문암리에서 정경이 제일 뛰어나다는
수중 낙산과 금강산포인트에서 찍은 독사진이다. 당시 리조트 주인이었던
해탐대 황대장(지금은 독도지킴이 모임운영)께서 몸소 함께 입수해서 찍어 준 것이다.
멋있게 펼쳐진 낙하산 사진과 나란히 걸려있는 사진은 C-123 를 타기전에 낙하산을 짊어지고
선배형님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다. 어느 주간지에 실리기도 한 사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난생 처음으로 강하를 할 때 그 형님께서는 함께 비행기에 오르고
장비점검을 직접 해주셔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CH-46 시누쿠로 무사히 첫 강하를 마친 다음 123에 오르기전 함께 찍은 사진이다.
마라톤 사진은 조선, 동아, 중앙일보사가 주관했던 마스터스마라톤대회에서
달리는 모습을 누군가 담아준 사진이다.
모두가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진 사진이라 사무실에 걸어두고
하루에도 몇번씩을 바라보는 사진들이다.
"뭐 그렇지.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하고 싶은 일은 많고... 그나 저나 내 나이 알지?
부담없는 걸로 생명보험 견적이나 하나 내봐?"
그러나 후배는 가만히 앉아서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만 있었다.
무엇인가 가방속에는 서류를 준비해 온 것 같은데 꺼내는척도 안했다.
내가 너무 앞서가 후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아닌가 해서 호들갑을 떨어야 했다.
"야! 야! 너 왜그래. 요즘 직장 옮긴 사람들이 한둘이야..."
후배는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허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으며 금방 활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참 이런 낭패가... 한 건 하는가 했는데 형님. 형님은 견적이 안나와요.
마라톤까지는 괜찮지만 저런 취미생활을 하시면 생명보험에는 견적이 안나와요.
형님 나이드시면서 왜 그런 취미생활을 하시는지..."
장난기가 서려 있기는 하지만 녀석은 한 건을 놓쳤다는 불만에 투덜대기까지 했다.
그의 말로는 견적이야 나오지만 보험료가 많이 들어 형님 형편에 감당키가
어려울 것 같아 말도 안꺼낸다는 것이었다.
후배가 돌아간 후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비행기는 가족들의 결사 반대로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무슨 우연인지 한결같이 "서약서"를 써야 대회든 실습이든 할 수 있는 종목만을 골라
왜 좋아하는지 나자신도 모른다.
지금도 마라톤대회 참가를 앞두고 온라인 접수에 앞서 서약서 "동의"에 크릭을 할 시점이다.
망서려진다. 오늘따라 망서려지는 나자신의 모습이 왜소해 보이는 이유는 왜인지 모른다.
아마 하늘의 뜻도 모른채 나이만 먹은, 이순에 이른 나이탓일 것이라고애써 변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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