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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인한 4월의 추억
    글과 함께 춤을/소설놀이 2012. 11. 25. 12:30

    2004년 12월 18일

     

    세상이 떠들썩하게 맞았던 지난해 새천년, 3월 며칠까지는 여늬해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4월 5일 식목일을 전후해서 거대한(?)음모가 알통의 머리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음모라기 보다는 차리리 그 것은 고민이었다.
    대한민국의 삼척동자라도 다알고 있듯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그러나 3無(없을 무), 즉 심을 나무도 없고, 삽도 없고, 심을 장소도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국가에서는 달력에다 빨간칠을 해두었기에 고민은 시작된 것이다.
    텅빈 사무실에 혼자 나가서 고관대작들이 삽질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볼 것인가 아니면 3무를 핑계삼아 훌쩍 떠나 "풍덩(run & scuba)"할 것인가? 정말 고민은 심각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얼마간 고민을 하다 정말 기가막힌 일이 떠올려 졌고 알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심리전을 펴면서 드디어 작전에 들어간다.
    퇴근하고 밥상이 놓여지면 심각한 고민이 있는척 마눌 들으라는 식으로 한마디를 흘리곤 하는 것이다.
    "어 이거 어떻게 하지. 가뜩 바빠 죽겠는데 가야산 국립공원에 출장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말야... 바쁜 시간에 안갈 수도 없고..."
    며칠째 저녁이면 노래를 부르듯 출장타령을 하니 드디어 알통의 마늘 입에서 반가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도리없죠. 출장갈 일이 생겼으면 가야죠..."
    때는 이때다 싶어 능글맞은 알통 짜여진 각본을 술술술 읊어댄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시간도 아낄겸 4월 4일 저녁에 가야겠어. 어차피 5일은 공휴일이고 6일은 금요일, 7일은 반공일, 8일은 일요일이니까 금요일 하루 까먹는 셈치고..."
    "맞아 옳거니 그거 참 좋겠네. 다행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불쌍한 알통 마눌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좋아라 장단을 맞춰준다.
    4원 4일 저녁에 출발할 때 공항에서 전화를 한번하고 나머지는 작전대로 이동중 꺼짐, 아니면 손전화 배터리 탓을 하면 된다는 심보인 것이다.
    음흉한 알통가재의 필리핀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급격히 진행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필리핀의 오지 아닐라오-.
    4박 5일의 스쿠버투어 기간중 야간다이빙 1회를 포함해서 모두 12회의 풍덩을 즐겼다.
    수중온천, 쌍둥이바위, 성당바위, 돛단배 등 제법 유명한 포인트가 즐비했고 지금은 관련 잡지들을 통해 자주 소개되고 있다.
    사실 열대의 수중여행은 텔레비죤이나 잡지를 통해 자주 소개되어서인지 처음에는 거의 환상적으로 다가오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체감할 수가 있다.
    바쁜 일정 강행군의 피로가 겹쳐서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정력이 남다른 알통으로서는 결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이 피로에 지쳐 곤하게 잠자는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 해변을 따라 아니면 마을과 산의 황톳길, 오솔길을 가리지 않고 달리기와 더불어 "지상 달리기 여행"도 즐겼기에 하는 소리인 것이다.
    사실 시작은 스쿠바투어였지만 오히려 "지상 달리기 여행"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통의 변덕스런 성격 때문일 것이라는 혹자의 의혹을 일소하기 위해 몇가지 에피소드를 간추려 투어기를 대신하려고 한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울음소리와 황톳길, 오솔길, 오막사리 같은 열대의 가옥 등 이같은 모습은 60년대 소년기를 보낸 한국사람, 특히 알통에게는 필리핀이라고 해서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늘 미소를 잃지않는 원주민들, 중학교에서 배운 영어실력 정도면 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4박5일은 그랬으니까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 첫 번째 에피소드

    새벽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을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한가롭게 햇살을 피해 파라솔 밑에서 브리핑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군대이야기를 화제로 시간을 보냈고 그때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가 차를 날라와 해병대 장교출신인 동료 한 사람이 그의 이름을 물었고 또 함께 통성명을 했다.
    알통은 그 때 군대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생각하여 그를 오피서(장교)출신이라고 소개했고 스스로는 솔져(병사) 출신이라고 소개를 했다. 물론 예비역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름도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알통"이라는 이름었다. 그 친구는 "Kim"은 발음을 잘했는데 "알통"은 발음을 잘못했다. "앨통", "얼통" 등으로 발음을 해 웃음을 샀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이름대신 "솔져"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해변을 따라 조깅을 할 때의 일이다. 얼마를 달리니 해변의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이들 서너명이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려니 그 녀석들이 덩달아 뒤를 쫓는다. 뒤를 돌아 한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그녀석 다짜고짜 솔져라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혔고 한편으로 어느새 소문이 퍼졌다는 생각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꼬마 녀석은 상상력이 풍부한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형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한국에서 솔져라는 사람이 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침에 막상 반바지를 입고 알통을 흔들어대며 달리는 알통을 보고 '저사람이 바로 그 솔져" 아니면 "낯선 사람은 모두 솔져"라는 생각에 뒤쫓으며 솔져라고 했을 것이다.
    잠시 멈춰서 동네 꼬마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멀리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주민들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정말 소문은 빨랐다. 물론 알통이 많이 나온 유별난 모습 때문이겠지만... 다이빙중 BC와 공기통을 날라주는 사람들도 슬며시 다가서서 웃음을 던지며 "솔져"라고 친근함을 보여준다. 왠지 반가워 그때마다 악수를 나누었다.
    그 날 저녁 한국에서 가지고 간 소주팩과 컵라면을 들고 남들이 잠든 사이에 슬며시 식당을 찾았다. 그 친구는 답례로 다른 맛있는 안주를 내놓기도 했다. 며칠을 그 친구와 저녁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여행지에서 감사의 뜻은 결국 돈으로 밖에는 표시할 수 없었지만, 또 서투른 영어로 몇마디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도 그 친구와 그의 아내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려지곤 한다.

    ●두번째 에피소드

    비록 새벽 달리기였지만 이틀을 보내니 리조트 인근은 모두 뒤지고 달린 셈이됐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먼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마침 전날 수중온천을 다녀온 터라 그때 솟아 올랐을 때 앞에 보였던 마을이 제법 컷기 때문에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보트로도 시간이 제법 걸렸으니까 서둘러야 될 것 같아 일찌감치 일어나 달렸다.
    산길, 황토길, 오솔길, 해변길을 지나야 했고 땀이 범벅이 됐을 때 비로서 언덕 아래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유황냄새가 진동을 했다.온천이구나 하는 직감과 함께 길가에서 김이 솟는 옹달샘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서도 호기심 많은 알통의 덤벙거림은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겨울철 우리나라 옹달샘에서 솟는 물안개로만 생각을 하고 손을 담갔다 낭패를 본 것이다. 비록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손 끝이 온종일 화끈 거렸다. 그리고 속물 근성 역시 감출 수가 없었다.
    "와! 이게 한국에 있다면 온천으로 한몫은 분명한데..."
    멀리서 동네 주민들이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손 끝은 뜨거웠지만 안그런척하면서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는 알통이 먼저 "하이"하며 손을 들어 인사를 청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여지없이 미소로 답을 한다.
    리조트에서 제법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솔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런데 마을 끝자락에 당도했을 때 이상한 일, 아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야 별일 아니겠지만 필리핀 오지에서 알통에게 충격을 던진 일이 다가선 것이다.
    제법 속도를 내서 알통을 뒤흔들며 달리는데 어디선가 또렸한 목소리의 "안녕하세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잘못들었나 싶어 고개를 돌려 살피니 하얗게 칠해진, 모터가 달린 나룻배를 매만지던 청년이 미소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다가갔더니 또 한번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얼떨결에 웃음을 보내며 "안녕하세요?"로 인사를 하고 그와 마주했다.
    그는 대뜸 "Ansan"과 "two years"라는 말을 던졌다. 영어를 잘해야만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는 안산공단에서 2년을 일하고 돌아와 배한척을 마련하고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네 새차를 구입하고 자랑스럽게 집앞에서 세차하듯...
    그는 셔츠며, 점퍼, 운동화까지 한국산 라벨이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한국에서는 고생이 심하지 않았느냐, 한국사람들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맙게도 "very kind"라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비록 10분여를 보냈을까 일정 때문에 발길을 돌리려는데 하루이상을 보낸 것 같은 아쉬운 미련이 삼삼했다.
    필리핀 오지에서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우리 말로 인사를 나눌줄은 누가 짐작을 했을까?
    한국에 돌아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학대 소식을 들으면 정말 참기 힘든 욕설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그리고 두주먹이 불끈 쥐어지면서 달려가서 흠씬 두드려 패주고 싶은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솟는다. 자랑스럽게 한국산 라벨을 보여주던 필리핀 청년의 모습 때문일까?

    ● 세 번째 에피소드

    "왜 전화도 없이 그렇게 바빴어?"
    "얼굴이 왜그렇게 빨갛게 익었지?"
    집에 도착하니 마눌의 푸념이 쉴새없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능글맞은 알통의 "가야산 봄 햇빛은 정말 독살스럽던데"라는 한마디는 모든 것을 그럭저럭 얼버무려 주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꼬리를 잡힌 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느낫없이 우송된 아닐라오 현지에서 찍은 사진 몇장은 알통의 자유가 무참히 짓밟히는 "알통사화"를 초래하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
    함께 다녀왔던 동료들이 보내온 편지봉투가 개봉되는 순간 알통마눌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짐작에 맡길 뿐이다.
    알통은 이실직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초범이라는 정상참작으로 알통을 대신해서 여권이 압수돼 연금 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지갑이며 주민등록증, 하다못해 단골병원 진료증까지 운전면허증만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해야 했으며 알통의 생사여탈권 모두가 마눌에게 넘겨지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도 억울해 마눌 몰래 여권을 되찾아 "다시 날라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도 여의치가 않았다. 장롱과 서랍 등 비밀스런 곳은 모두 뒤졌지만 여권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하루 숨막히게 마눌의 눈치만 살피는 시간이 더디게 지나갔다.
    밥과 김치에 찌개가 곁드려지면 너무나 황송할 뿐 그야말로 입이 열이라도 "찍소리 못하는" 불쌍한 나날이 이어졌던 것이다.
    한달쯤 지났을까 알통의 착실하게 근신하는 모습에 정상 참작이 되었는지 드디어 마눌의 "하늘 같은 은혜"가 내려졌다.
    알통의 마눌은 피를 토하듯 외쳤다.
    "알통! 인간적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자. 내가 이 여권을 찢어버리려고도 맘을 먹었지만 나 모르게 또 다시 분실신고 내고 돈들여 재발급 받을까봐 돌려준다. 하지만 각서 하나는 꼭 쓰자."
    그러나 아무리 마눌이 울부짖듯 말한다해서 각서를 재빨리 써준다면 남자 체면은 말이 아닌 것이다. 결국 무릅을 꿇다시피 통사정을 해야만 했다. "다시는, 다시는"이란 말을 수도 없이 해댄 것도 숨길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통사정을 하느니 차라리 각서를 하나 간단하게 써주는 것이 남자다웠을 것이라는 후회가 앞서는 것을 보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당시의 상황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통의 마눌은 핸드백에서 여권을 꺼내 내던지듯 돌려주었다. 쌀뒤주 속까지 뒤져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여권이 짐작도 못했던 손가방에 연금돼 있었다.
    역시 등잔 밑이 어두웠으며 길은 아주 근접된 곳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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