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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미션은?
    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2. 12. 25. 00:08

     

     

    서울에 있을 때 이따금 만나는 친구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 만나면 살면서 쌓여진 푸념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ㅂㅇ친구다. 전화의 끝에는 술 약속이 이어져도 좋고 식사 약속이 이어져도 좋은 그런 친구다.
    여러 가지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친구다.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그 친구는 소주나 맥주 같은 청주를 즐기고 나는 막걸리 같은 탁주를 즐긴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안암골 막거리였고 그 친구는 신촌골 맥주다.  그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 그 친구 앞에서는 나의 취향을 쉽사리 포기하는 편이다. 그 만큼 그 에게 많은 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느해 더운 오후 어느 때처럼 전화가 이어졌고 그 때도 “시원한거 한잔”으로 낙찰이 됐다. 언젠가 한번 함께 들렀던 을지로 입구 지하에 위치한 큰 호프집으로 향했다. 실내는 시원했고 비흡연석도 마련된 곳이 있어서 “시원한거 한잔”씩 몇 잔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가 있었다.
    취기가 약간 오를 무렵 그 친구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을 했다.
    과거 군생활 때 뇌막염으로 보름동안을 혼수상태에서 보내다가 깨어난 일이 있는데 이를 포함해 평생 두 번씩이나 사경을 헤매다 깨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두 번이나 살려주었을 때는 자신에게 어떤 임무(mission)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해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 임무가 무엇인지 생각중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카토릭신자이고 나는 당시 무신론자였지만, 비록 무신론자적 관점에서일지라도 조물주가 두 번이나 다시 되돌려 보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음직했기 때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그는 신의 계시라고 느껴져 정갈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그 암시를, 그 임무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산다고 말했다. 
    비록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동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친구처럼 보름간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은 일이 있었다.
    장출혈에 의한 빈혈이 원인이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아내가 나의 몸을 뒤흔들며 “진후 아빠”하고 절규하는 모습이 올려다 보여 졌다. 뒤통수의 아픔이 느껴졌고 등어리에 느껴지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은 시원하고 편한 침대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고통을 체험하고 깨어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식을 잃었던 당사자는 전혀 그러지가 않았다. “또 다른 시공에서 또 다른 삶”을 살다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찔했던 기억은 나는데 그 후에 주마등처럼 지나간 시간은 그야말로 황금빛이었다.
    햇빛이 따가운 여름 오후 저녁 때쯤이었다. 따가운 햇살이 하도 실감나 깨어났을 때 등어리의 콘크리트 바닥이 시원하게 느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석양 무렵 올망졸망한 남매를 데리고 한 가족은 텐트를 차려놓고 야영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있었고 간간이 얼굴에 묻은 흙탕물을 마주보며 깔깔대고 있었다. 나는 가까운 곳 낚시의자에서 한여름의 석양노을과 더불어 흐믓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후 아빠”하는 아내의 절규가 아니었다면 “미소짓고 있던 그 시간과 공간에서 그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이들이 너댓살 올망졸망하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야영을 떠났던 시간이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됐었기에 “미소짓고 있던 그 시간과 공간에서 그 삶”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이들의 깔깔대고 좋아하는 모습하며 이를 흐믓하게 지켜보는 아내의 따듯한 시선, 따가운 저녁햇살, 노을 빛, 손끝에 만져지는 축축하고도 깔깔한 모래의 질감 등 길다면 긴 몇 시간동안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재현됐다가 사라졌다고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욱이 무의식 속에서 체험한 그 시간과 공간은 너무도 사실적이었기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감지 못하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이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면 바로 그 곳이 죽음의 세계일지라도 믿고 싶었다.
    청년기에는 또 이상한 경험도 했다.
    군에 입대한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을 때 씨름을 하다 뒤로 넘어져 뒤통수를 다쳐 하루종일 기억을 잃은 일이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호주머니 속에 있는 이 할머니의 사진은 누구인가?
    누군가 아는척을 하는데도 지나치고 말았다. 저녁 무렵에야 그 할머니 사진이 바로 어머니였다는 실마리로 간신히 기억을 되돌릴 수가 있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친구가 몇년전 떠올려 주었던 잊지 못할 “임무”로 해서 나 또한 지난 시절의 잊지 못할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혈기왕성했던 장정시절, 그 시절로부터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른 듯싶다. 나 같은 필부에게도 주어진 그 “임무”가 과연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순”이라지만 세상의 이치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조그만 일일지언정  "mission impossible(불가능한 임무)"가 아닌 "mission possible(가능한 임무)" 가 있기는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져본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순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는 알고자 노력도 해보고 또 “알아가는 과정”에서 끝난다 해도 후회가 없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구체적으로 꼭 찝어서 “어떤 임무”가 아닐지라도 막연하나마 그 “임무”를 일깨워준 친구의 정갈한 심성이 지금도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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