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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
    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3. 1. 16. 05:42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1938 9월 평양에서 제27차 장로교 총회가 개최됐다.

    일제의 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날 총회는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한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예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부활을 위해

     “일사각오(一死覺悟)”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말을 남겼다.  


    “내세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조차 이념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주님을 믿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하겠는가?

    일사각오의 믿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크고 굳센 믿음이라는 생각이다.

     

    몇해 전 추석 연휴 서울 광진동 장로신학대학 교정을 조용히 산책하다

    주기철 목사의 순교기념비를 자세히 살필 수가 있었다.

    또 추석연휴가 끝나고 당시 자원봉사를 하던

    서울 양재동 윤봉길 기념관으로 출근을 하는데

    입구에는 11월의 호국인물로 주기철 목사의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같은 날 당시 대학동기며 윤봉길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던

    남효응군과 점심을 함께 하고 돌아 오는 길에

    “11월의 호국인물 주기철 목사를 제법 잘 아는척 하면서

    장신대 교정에서 읽었던 비문을 상기시켰다.  

    친구는 미소만 짓고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친구는 자기 방에서 차 한잔 할 것을 권했고

    컴퓨터를 열더니 읽어보라는 듯 모니터를 가리켰다.

     

    남영환이라는 이름이 나왔고 그 이름은 바로 그 친구의 아버님 성함으로

    주기철 목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잘난척한 것이 다소 민망하기는 했지만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친구가 또 보여준 글은 고신 증경총회장인 최해일 목사의

    “고신 교회 반세기의 회고”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
    중략)--------
    1946
    7남영환 전도사를 만주로 파견, 박형룡 목사를 초빙해 왔다.

    남 목사의 말에 의하면 서해 바다를 항해해 오면서 풍랑을 만나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동년 9 20박윤선 목사를 교장 서리로 하고 부산 금성중학교 교사를 빌려서

    고려신학교를 개교했다. --------(중략)-------

    장신대 교정에서 주기철 목사 순교기념비와의 마주침,

    사무실 출근길 11월의 독립유공자 주기철목사 포스터와의 만남,

    친구 부친이 주기철 목사의 제자라는 사실 등

    짜맞춘 듯 이어지 일들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펼쳐진다.
    결코 우연이란 없다란 생각과 더불어 잔잔한 가슴의 울렁임이 손으로 만져진다.

    글 알통: http://blog.daum.net/dumj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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