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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장미의 음흉한 미소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의 비밀
    어느 시인의 식물감각 2020. 1. 9. 22:51




    장미를 바라보면 온갖 생각이 교차한다.

    장미는 정말 아름답다, 향도 단연 으뜸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가시를 보면, 또 찔려 본 경험이 있는 이에게는 짜증 섞인 질문이 저절로 떠올려 진다.

    왜 쓸 데 없이 가시가 있는 거야? 장미 너 바보 아냐?

    오랫동안 그 답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그러나 과학자의 눈은 지나쳐도 시인의 감성의 눈은 피할 수 없는 법, 드디어 가시에 얽힌 장미의 음모를 적라라 하게 밝혀내고 말았다. 아마 세상에서 처음의 일일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 세상 제각각의 꽃들은 나름의 전략을 감추고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벌과 나비, 그리고 기타 곤충, 아니면 새, 아니면 네발짐승 등을 끌어들여서 꿀과 향을 주는 대신 꽃가루를 수정시켜 씨를 맺고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장미의 빼어난 아름다움, 장미의 탁월한 향에는 어디에도 그 해당사항을 찾을 수가 없다. 장미의 씨는 빨갛고 큼지막해도 번식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허 씨이기 때문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빼어난 자태와 향, 허 씨, 날카로운 가시 등 이 퍼즐조각을 짜 맞추려면 탈무드를 지어낸 유대인의 지혜로도 모자랄지 모른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날카로운 가시에 초점을 모아보면 길고 길었던 의문의 여정이 종착역에 이른다.

    만약 장미의 가시가 없었다면 온갖 초식동물들이 장미 밭을 초토화시키고 만신창이로 만들어 멸종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 이르러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사람은 무릎을 쳐야하는 대목이다.

    장미는 오로지 가시를 피해 갈 줄 아는 지혜로운,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의 교감만을 원했던 것이다.

    가시를 피할 줄 모르는 지혜 없는 동물은 접근금지, 오로지 인간과의 교감을 원했던 것-.

    장미의 가시와 허 씨는 호모사피엔스에게만 보내는 보디랭귀지인 셈이다.

    나는 아름다운 자태와 향을 줄 터이니 당신들은 허 씨의 의미를 깨닫고 꺾꽂이로 나를 번식시켜 자자손손 즐기시라!

    누가 식물은 뇌가 없다고 호언장담 하는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장미를 비롯한 모든 식물은 사람의 뇌와 입, 눈, 코 등 오감을 뛰어넘는 다차원적 감각감지 능력을 지녔으며 나름의 생존전략도 갖고 있다.

    장미는 지금도 자신을 정신없이 바라보는 나를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 수 아래인 듯 내려다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정하다 찔리고, 옮기다 찔리고, 수형 다듬다 찔리고,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고, 수도 없이 찔리고 있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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