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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등병
    Nothing is impossible!/군대의 추억 2012. 12. 4. 18:54

    75년쯤, 70년대 중반쯤 당시 진급측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여단 본부에서 제시하는 일정기준을 통과해야 진급을 시켜주는 것이다.

    장교나 하사관들도 그 같은 측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각종의 훈련과 작업에 지친 병들에게는

    진급에 상관없이 "진급측정"이 또 다른 휴식시간이기도 했다.
    일등병에서 상병으로의 진급을 앞두고 다른 진급대상자들과 함께 여단 연병장에 모여

    측정을 기다리는데 별안간 단본부 선임하사께서 SFOB를 호명했다.
    "너는 우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저쪽 헬기장 뒤 나무그늘에서 아주 푹 쉬고 있어. 알았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질문할 겨를도 없이 진급대상자들을 사격장으로 인솔해 갔다.

    당시는 상병제대도 많았던 시절이라 상병이든 병장이든 때가되면 진급을 하겠지만

    일단은 제때에 때맞춘 진급의 기회는 박탈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궁금증도 잠시 두어시간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지랭이를 오히려 즐겁게 해주었다. 병장으로 제대는 했지만 당시로서는

    "진급은 못해도 국방부 시계는 지금도 돌아간다"는 생각에 제대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두어시간이 지났을까 총 멜빵고리 부딪히는 "쩔그덕쩔그덕" 소리에 졸음이 깨자

    사격측정을 하고 돌아온 선임하사를 향해 뒤를 좇았다.
    "저 선임하사님..."
    "어 자넨가? 자네 31대대 맞지."
    "예, 그렇습니다."
    선임하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야 전투력측정으로 진급을 하자면 별도 쉽게 따겠지만 한데...."
    그는 또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귓속말로 나즈막하게 말을 했다.
    "중대장한테 잘보여야지."
    자초지종은 그랬다. 전투력이고 뭐고간에 다 좋은데 중대장이 점수를 주지 않으니

    암만 측정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사격해 보았자 총알만 아까울뿐

    차라리 편히 쉬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크게 배려를 해준 것이다.
    그 선임하사의 배려는 그 후로도 몇번이고 이어졌지만 "중대장님께서 왜그랬을까?"하는 궁금증은

    풀리지를 않았다.
    당연히 푸념이 이어졌다.

    중대장님 그렇게 미우시다면 어려운 자격조건을 통과해서 66지역대(몸으로,

    육탄으로 경호한다고 해서 66이었다나 당시에 창설됐으며 후에 경호부대와 어떤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음)에 차출됐을 때 왜 떠밀 듯이 보내지는 않고 쫄병 진급해보았자 거기서 거긴데 그마져 막으시는지...
    그렇게 미우시다면 당장에라도 전방으로 보내주시든가...


    제대후 몇 달후이든가 어느날 당시의 중대장님께서 우리집을 방문을 했고 술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미안했다"고 몇번을 반복했는데 진급누락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준비된 여단주임일등병(?)은 이렇게 태어났던 것이다.
    아무튼 여단주임일등병으로 오랜동안 봉직(?)한 덕에 정말 "신성한 국토방위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심사숙고하기도 했다.
    아들녀석이 군대에 갔을 때 일등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가 귀엽다고 여간 늠름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보자마자 대뜸

    "어 용감한 일등병 아들 휴가왔는가"했더니 멋쩍다는든 듯 녀석은 애비의 말을 바로 잡아 주었다.
    "아버님 일등병이 아니라 일병이라니까요"
    어이가 없었지만 한마디로 녀석의 궁금증을 일거에 잠재워 주었다.
    "인석아 군인중에 장사병을 통틀어 제일가는 일등의 군인이 일등병이야...

    비록 그 위에는 오대장성의 하나인 병장이 있기는 하지만..."

    24개월여의 일등병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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