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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망가지는 거야
    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3. 1. 10. 06:50

     

    눈덮인경북 봉화 문양마을-. 이 곳에서 축처사(부석사 모절)에 이르는 길은

    환상적이 달리기 코스다. 삿과나무 밭, 송이산, 냇물, 문수산 등이 꿈속처럼펼처진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공개된 훈련일지를 보면서 이따금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놀라운 경우를 본다. 물론 전업선수의 기록을 앞질렀다든가 하는 기록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가령 트랙을 반복해서 도는 경우 랩타임이 두 세 번도 아니고 일곱 여덟 번 정도 몇분 몇초까지 일정하게 찍혀져 나오는 경우를 보는 것이 그 놀라움이다.
    등속도의 지속주라고나 할까? 변함없는 속도감도 속도감이려니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 기계적인 정교함은 인간의 한계와 육체의 신비로움까지 상상의 비약을 낳는다. 한마디로 신비하고 경외스럽다고나 할까 더 이상의 표현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추어마라토너로서 신기록을 수립한 전업선수의 우승을 경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도 동떨어진 곳,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왜인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뭍사람들이 4시간이 넘어서 주파하는 거리를 2시간에 주파한다는 것은 범접할 수 없는 “초인의 경지”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초인들의 경지가 실감은커녕 동화 속의 흑기사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같은 불감증으로 해서 황영조, 이봉주, 또 그 외 누구 누구 마라톤 대표선수들에게는 섭섭할지 몰라도 늘 옆에서 함께 뛰는 아마추어마라톤 고수들의 이야기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일까? 여기에서 아마추어마라톤의 고수란 기록에 관계없이 365일 달리기를 즐기며 이따금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구분을 두루뭉실 광범위 하게 잡은 것은 지금이든 훗날이든 나 또한 포함되기를 바라는 음흉한 속셈이 저변에 깔려있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과 장마철의 여름은 아마추어 매니아들에게는 참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서울서 살 때의 어느 일요일 새벽 비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고 도리없이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기어코 집을 나섰다.
    우산 쓰고 잔디트랙을 산책하는 몇 사람이 눈에 띌 뿐 달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주저않고 달렸다.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네바퀴...
    다섯바퀴째 뛰고 있을 때 불현듯 가리켜진 랩타임이 심상치 않게 보였다. 처음에는 4분 03초를 가리켰던 것이 두 번째, 세 번째가 3분58초로 동일하게 찍혔다. 네 번째는 3분 56초가 찍혔고 다섯 번째는 다시 3분 58초가 찍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아깝다는 생각과 더불어 왜, 왜라는 말이 계속 이어졌고 3분 56초로 시간이 단축된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물론 여섯바퀴 이후 일곱, 여덟바퀴까지는 힘도 부쳤지만 이 같은 잡념때문인지 4분 몇초씩을 가리켰다.
    의문은 아홉바퀴째 사각의 트랙 각진 모서리를 돌면서 풀어졌다. 아니 풀어졌다기 보다는 추측컨대 각진모서리를 따라 각지게 돌았어야 했는데 둥글게 돌아버렸기 때문에 2초가 단축됐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론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달리기를 접어야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별안간 분초를 따지는 나 자신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외스럽게 생각했던 고수들의 등속도 랩타임도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빗길을 걸으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몇 번이고 똑 같은 의문이 머리를 감쌌다.
    “어느새 몇분 몇초를 따지며 사는 인간이 됐더란 말이냐?”
    아침부터 와인 한잔 곁드릴 구실이 생겨 버린 것이다.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이따금 보이는 월요일 오후 창밖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서 두 가지 화두를 떠올려본다.
    마라톤 때문에 몇 분 몇초를 따질 정도로 각박하게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흐트러졌던 마음이 마라톤으로 해서 정교하게 고쳐져 가고 있다는 것일까?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잡생각일지 몰라도 한동안 고민에 젖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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