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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晝耕夜讀)의 허와 실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3. 1. 27. 01:27
흰 눈이 쌓인 겨울 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린 손자, 아들의 고사리 손에 이끌려 앞마당으로 나옵니다.
어린 손자가 눈 위에 책을 폅니다. 책장의 글이 어렴풋하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 했습니다.모기불 자욱한 한여름 밤-.
어린 손자가 병에다 반디불이를 잔뜩 잡아와 그 발광 불빛에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초로의 아버지도 빙긋이 따라 웃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공부해라”는 말씀보다
“형설의 공(螢雪의 功)”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하셨습니다.
호기심과 의문이 많던 나는 그 것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보시는 앞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고 그 것을 확인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각인이 됐지요.
(어린자식 혹은 어린손자가 있으시다면 겨울과 여름에 함께 확인해보는 것도 한 재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확인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입니다.
당시에는 어린 나이라 몸소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농사일 마치시고 초저녁에 곯아떨어지시는 어른들 모습에서
막연히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길다면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 한 번 새삼스레 상기해 봅니다.
귀농한지 십년, 그리고 임진년에 태어나 임진년을 맞은 나이에 그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식사후 초저녁 인터넷을 살피려 컴퓨터를 켜지만 졸음이 쏟아집니다.
모니터와 몇 번인가 박치기를 합니다.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나도 모르는 외계어가 찍혀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둔채 잠이 드는 것은 일상의 일입니다.
책을 읽으려는 시도는 꿈도 꾸어지지가 않습니다.
주경야독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과로나 과 운동 상태가 되면 몸은 천근만근 같아도 잠이 잘 안 옵니다.
각성상태가 지속되다보니 눈은 말똥말똥 합니다.
먹을 갈아 붓을 잡아보지만 손은 떨리고 획이 바르게 그어지지를 않습니다.
주경야독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농경시대 주경은 오늘날 직업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일한 후 야독, 공부할 수 있는 직업도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런 직업이라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러나 직업을 바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무엇인가 이룬다는 생각보다는 언젠가 공들인 것만큼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날이
꼭 오리라는 희망은 지금 이 나이에도 늘 갖고 살아갑니다.'글과 함께 춤을 > 산문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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