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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몸안의 외톨이 DNA
    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3. 1. 26. 15:11

    나를 졸졸 따라 다니는 외톨이 DNA

    내 몸안에는 외톨이 DNA가 늘 쫓아다니는 것 같다.
     
    어린시절 나는 청와대 옆에 있는 학교를 다니며 
    효자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와대 들락거리며 송충이도 많이 잡았다.
    그 덕에 육영수여사가 주시는 노트도 받았다.
    말그대로 "광화문통 아이"이다.
    68년 무장공비습격때 제 친구"김형기"가 죽기도 했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나의 안방이었다.

    당시 나의 별명은
    자랑스럽게도 무려 두가지나 됐다.
    하나는 "두더지",
    또 하나는 "기생충왕"이 그것입니다.
    두가지는 깊은 연관이 있다.

    서울 한복판 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한 일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쓰고,
    기생충 검사(대변검사)를 하는 것이 당시는 필수 코스였던 것 같다.
    서울 변두리에서 농사를 짓는 집 막내아들이다보니
    부모님이 농사꾼이라는 사실이 담임 선생님 입을 통해 공표됐고
    아이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땅파먹는 "두더지"라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참 철없던 시절이라 지금도 이 시절 친구들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음은 조금 다르다.
    그 시절은 나라에서 기생충 검사도 해주고

    회충약을 무료로 나누어주던 시절이다.

    기생충검사결과를 통보받던 날,
    그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기 때문에
    적라라하게 옮겨 보겠다.

    담임 선생님이 호명한다.
    "알통"
    "예" 공손히 대답하고 선생님이 서 계신 교단 앞으로 간다.
    나의 검사 결과를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더니 이내
    "뭐 이런 놈(사실은 ㅅㄲ)이(가) 다 있어. 기생충 왕이구만"
    하시며 쪽지를 냅다 던진다.
    벌레보듯 바라본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졋고, 아이들 웃음 소리가 요란했다.
    그 후는 기억이 잘안난다. 
    기생충 왕이 하나 더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일로 해서 구충과 약물치료로
    "대꼬챙이"가 우람한 체격으로 변하게 된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감사하단 생각 외에는 없다. 
    그러나 사실 선생님은 왜소했다. 
    당시 선생님 별명은 "쥐똥"이었으니까 작은 체구를 지니셨다. 

    오늘날의 사도(師道)를 객관적으로 면밀히, 편견없이 생각해본다. 

    사도란 무엇인가 판단을 유보해 본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쓰는동안
    한 녀석이 도시락을 까먹다 들켰다.
    화들짝 놀라 그만 도시락이 엎어졌다.
    주번이 보고 있다가 얼떨결에 걸래질을 하니
    밥알이 쥐똥처럼 까맣게 뭉쳐졌다.
    그 것을 보고 한 학생이 "쥐똥이다!"라고 외쳤다.
    그 녀석 그 일로 해서 1년내내 뒈지게 맞았다. 

    아무튼 어린시절 나는 자연히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소위 왕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공부, 체육, 미술 등 다방면에 따라올 사람이 없어서
    우쭐대지 않아도 따르는 친구는 많았다.
    스스로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다. 

    그 때 외톨이 DNA가 생겨난듯 하다.

    고교시절에는 특기가 아닌 취미로 혼자하는 "역도"를 택한다.
    이 운동은 대학까지 이어졌고 평생을 마라톤과 병행하고 있다.

    대학때는 운좋게 가정교사로 입주해서 고학을 할 수 있었다.
    가리키던 학생을 학교 들여보낸후에는 그 집 회사 빌딩 야간 경비로 일을 했다.
    군대 가기전까지 한집에서 3년을 보낸 것이다.
    아침 6시까지 사무실 청소해놓고 직원들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등교를 하고
    저녁 6시에 하교해서 회사에 도착하면
    직원들은 나에게 열쇠를 맡기고 퇴근한다.
    당시 회사에는 금고도 있고 값나가는 물건 쌓아두는 창고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년을 공휴일 없이 야간에는 혼자서 보낸 것이다.
    당시 사무실은 대한민국 최고의 환락가 "명동"에 있었으니

    나의 인내심도 대단하다는 생각 가끔 해본다. 

    또 군대를 가니까 여기에도 어느정도 외톨이 DNA에 걸맞는 곳에서 근무하게 된다.
    소위 이야기하는 비정규전 부대, 특수전 부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자원이 아니라 군심사관이 나의 외톨이 DNA를 발견하고
    적임자로 꼽아 차출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ㅎㅎ 
    특수전 부대는 일반 정규전 부대와는 달리 선의 조직이 아니라

    점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수 많은 시간을 혼자서 은밀하게 움직였으니 말이다..
    봉화에서는 늘 외딴집에서 살았다.
    은퇴하고 인생 2막 산림가사 자격을 따서 지금도 산중에서 혼자 일한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이 일을 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택했더라도 며칠못가서 떠났을 것이다.
    또 일을 하더라도 관리감독하는 사람 없어도 

    나처럼 혼신의 힘으로 일하는 사람은 드믈 것이라는 생각이다.

    창조주께서 주신 내 몸안의 외톨이 DNA, 나만의 달란트

    소중하단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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