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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기 양말 국물로 해장한 사람도 있어요!글과 함께 춤을/산문놀이 2013. 1. 29. 23:41
대학시절 3년을 명동입구에서 고학을 하며 보냈다.
지금은 압구정동이니 홍대입구니 하지만
당시는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명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환락가가 아닌가.때문에 환락가 코앞에서 꼼짝도 못하며 빌딩 경비를 선다는 것은
젊은 날에는 큰 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문은 따로 있었다.
후배든 친구든 찾아 올 때는 염장을 지르는 꼴이다.친구가 좋아서, 형이 좋아서 찾아온다면 술이라도 사들고 오면 오죽 좋으련만
술은 어디서 잔뜩 퍼마시고 통금시간에 쫓겨 여관비 아끼려고 오는 것이다.
만취상태에서 오니 아무리 “형” 앞이라지만 안하무인-.
토사까지 해낼때는 기가찬다.어느 날 통금이 지나 방범들 호루라기 소리를 피해
만취상태의 후배가 용케도 찾아왔다.
잠자리를 마련해주자 후배는 양말이며 옷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더니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얼마쯤지나 새벽녁 벌떡 일어나더니 목이 탄단다.
말할 것도 없이 손가락으로 주전자를 가리켰더니
엉금엉금 기어가 쭉쭉 잘도 들이킨다.
모자라는지 또 “형”을 외친다.
그래서 또 물을 채워주었다.후배는 아침에 미안했는지 뿌시시 일어아 주섬주섬 챙겨 입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한마디 던진다."형! 어제 나 양말 두 쪽 다 신고 왔어?”
"영 모르겠는데.”후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양말을 한쪽만 신은 그의 뒷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등교를 위해 바쁘게 사무실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주전자를 찬장에 옮기려 하는데 묵직한 느낌이 이상하다.
속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후배가 찾던 양말 한쪽이 있었다.보리차를 끓이며 태운 일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주전자 속과
양말이 구분이 안됐던 것이다. 무리 있는듯해서 쭉쭉 소리가 나도록
빨아 마시던 후배의 모습이 생각나 속이 뒤틀리기도 했다.
들고 뛰면 빌딩 앞 정거장에 서있을 것 같은 후배에게 돌려줄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깨소금”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차하는 순간에 나도 마실뻔한 그 물이 자꾸 생각이 났던 것이다.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양말 한 쪽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등교해서 강의실에 들어설 때까지
내 얼굴에는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이 웃음거리를 누구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아
지금껏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없다.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미안함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양말 국물로 해장했는데 뭘하며 지금도 웃는다.'글과 함께 춤을 > 산문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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